[부동산정보]/용산공원정비구역(미군기지)

용산공원예정지 위치,면적,입지특성,역사

Altari 2011. 4. 9. 15:53

 

위치

용산공원 예정지는 서울특별시 중앙부의 용산구 내에 위치하고 용산구 내에서도 한 가운데에 입지하고 있으며, 한강에도 인접하여 명실상부한 서울의 지리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남산 2호터널과 3호터널에서 반포로를 통해 강남으로 연결되며, 서측으로는 서울역에서 노량진으로 연결되는 한강로가 남북으로 관통하며, 용산기지 중앙의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의 중앙으로는 이태원로, 지하로는 지하철 6호선이 기지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현재는 미군 용산기지 부지로 활용되고 있으나, 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병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던 곳으로 근대 한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공원 예정지는 용산구 용산동 1가, 2가, 3가, 4가, 5가, 6가 및 서빙고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공원 예정지의 면적은 현 용산기지 본체부지 약 2,677,000㎡(메인포스트 793,000㎡, 사우스포스트 1,884,000㎡) 중 한·미간 협정에 따라 공여·교환되는 부지를 제외한 약 2,460,000㎡이다.
 
 
드래곤힐 호텔(약 84,000㎡) 및 헬기장(약 56,000㎡)은 2004년 10월, 한·미간 체결한 협의서(UA/IA¹)에 따라 미군에 계속 공여되며, 미대사관 부지(약 79,000㎡)는 2005년 7월 한·미간 체결한 MOU²에 따라 신축부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1. UA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

   IA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의 이행을 위한 합의권고에 관한 합의서」

 
2. MOU -「주한미대사관청사이전에 대한 대한민국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양해각서」
 
 
인접시설인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및 국립중앙박물관을 공원에 포함시킬 경우 공원의 총면적은 약 2,950,000㎡이다.
 
 
 
공원 예정지  

2,458,076㎡

 
본체부지
2,677,698㎡
  메인포스트(MP)  

793,392㎡

 
  사우스포스트(SP)  

1,884,306㎡

 
존치부지
219,622㎡
  드래곤힐 호텔  

83,967㎡

       
  미대사관(이전)  

79,000㎡

       
  헬기장(신설)  

56,655㎡

 
산재부지  

176,308㎡

 
캠프킴  

48,399㎡

 
유엔사  

51,731㎡

 
수송부  

76,178㎡

 
기타 부대시설  

764,974㎡

 
국립중앙박물관  

295,551㎡

 
국방부  

277,687㎡

 
전쟁기념관  

115,703㎡

 
용산가족공원  

76,033㎡

 

입지특성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용산은 도심과 직접 연계되어 향후 서울의 전략적인 중심지역으로서의 개발가능성을 담고 있는 지역이다.
 
 
입지상으로도 남산과 한강 사이에 위치하여 서울시의 가장 중심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용산공원 예정지는 남산의 녹지와 한강의 수계를 이어주는 서울시 전체의 생태·환경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20 서울공간 구상도>
 
접근성
용산공원 예정지는 지하철 1호선(남영역~서빙고역), 4호선(숙대입구역~이촌역), 6호선(삼각지역~녹사평역)총 3개의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다.
 
 
공원 예정지 서측에는 고속철도 용산역이 인접하고 있어 수도권 외곽 지방에서의 광역적 접근 또한 용이하다.
 
 

현재 공사중에 있는 신분당선(강남~정자)이 용산까지 확장될 경우에는 도심과 강남이 직접 연결되어 지하철에 의한 수도권에서의 광역 접근체계가 보완될 것이다.

 
 
도로망은 현재 3개의 교량(한강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이 공원 예정지와 인접하여 강남에서 대상지로의 접근이 가능하고 강남북간의 연결을 담당하고 있다.
 
 
<도시철도 현황>
 
<주요 도로망 현황>

 

역사

용산은 고려 말 몽고군의 병참기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었으며,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러일전쟁과 함께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주둔하면서 일본의 무력에 의한 조선지배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후 해방과 함께 미24사단이 일본군 기지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용산기지는 미군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개항기
 
예로부터 용산은 서강, 마포, 두모포, 송파와 함께 한강의 수운을 통해 전국의 물자가 집결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한양 천도 후 용산 일대에는 둔전(屯田)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전략적으로 강안을 지키는 주둔병의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며, 한강변에는 병참기지인 군자감이 설치되어 있었다.
 
 
1876년 인천개항 이후 용산은 개시장(開市場)으로 외국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이후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오장경 병력이 주둔하였다.
 
 
일제강점기
 
과거 전통적인 용산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외침과 함께 외국군의 주둔지로 사용되는 비운의 장소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개항 이후 용산이 개시장(開市場)이 되었으며, 청일전쟁 이후 청군과 일군이 주둔하였고, 러일전쟁과 함께 조선주차군사령부와 20사단이 용산에 주둔하면서 일본의 무력에 의한 조선지배의 무력근거가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용산일대는 물류와 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병영신시가지로 조성되었으며, 인접한 후암동과 청파동일대의 일인 거주지와 함께 병영상권이라고 불릴 만큼의 독립적 성격을 강하게 유지하게 되었다.
 
 
 
 
해방이후
 
해방과 함께 1945년 9월 한국에 진주한 미 24사단이 일본군 기지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용산기지는 미군시대를 맞이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주둔하의 용산은 주변의 일본인거주지와 함께 조선인의 삶과 일정 부분 격리되어 있었으나 해방 후 미국군 주둔하의 용산은 서울 시민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 한국대중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용산에 주둔한 주한 미군을 상대로 한 화랑가의 형성과 미8군 부대는 한국 현대 미술과 대중음악 형성의 또 다른 거점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 용산은 지리적으로 여전히 서울의 심리적 변방이었다.
 
1970년대 강남 개발과 1980년대 동작대교 건설 및 4호선 개통 등을 계기로 용산지역이 서울과 소통할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기도 하였다.
 
 
1991년 미군 골프장이 반환되어 용산가족공원이 조성되었고, 1993년 메인포스트 일부가 반환되면서 전쟁기념관이, 그리고 1995년 구 조선총독부가 전격적으로 철거된 이후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성되면서 용산의 변화와 미군기지의 이전은 사회적 현안으로 급속하게 등장하게 되었다.